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마누엘 칸트 (문단 편집) === 순수한 도덕을 찾아서 === 칸트는 1762년에 [[장 자크 루소|루소]]의 저술을 읽기 시작했다. 『에밀 또는 교육에 관하여』를 읽기 시작했을 때, 그는 몸이 얼어붙어 며칠 동안 규칙적인 산책을 하지 못했다. 그는 루소의 자연적인 인간상, 즉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교육된 인간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청년 시절의 칸트는 뉴턴으로부터 자연과학적인 세계 관찰의 원칙들을 진지하게 수용했다. 그는 『자연사와 천체 이론』에서 그 첫번째 정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제 루소로부터 그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루소의 역설은 인간 영혼 속에 감추어진 어떤 흔적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1765년에 칸트는 전해에 출판된 『미와 숭고의 감정에 관한 고찰』의 여백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했다. "오직 이것(물리적 세계 인식)만이 인간의 명예를 세울 수 있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지의 천민들을 멸시했다."[* 칸트는 1762년에 루소의 저술을 읽기 시작했다. 청년 시절의 칸트는 뉴턴으로부터 자연과학적인 세계 관찰의 원칙들을 진지하게 수용했다. 그는 『자연사와 천체 이론』에서 그 첫번째 정점에 도달했다. 루소로부터 그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루소의 역설은 인간 영혼 속에 감추어진 어떤 흔적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중략) 그러나 루소로부터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어떤 관점을 취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칸트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재미있는 측면도 얻어낼 줄 알았다. 인간의 실천적 인식에 대한 칸트의 관심은 루소를 통해 각성된 것이었다. 1765년에 칸트는 전해에 출판된 『미와 숭고의 감정에 관한 고찰』의 여백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했다. "오직 이것(물리적 세계 인식)만이 인간의 명예를 세울 수 있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지의 천민들을 멸시했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344~345)] 1770년 무렵이 되자, 칸트는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즉, 자신의 "도덕형이상학"이 "시초의 근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태도나 감정에 대한 가능한 고찰 영역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도덕형이상학이 즐겁고 교훈적인 발견에만 제한되어서는 안 되며, 개별적인 주관의 의욕 혹은 행위의 주관적 원리에 불과한 준칙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도덕형이상학자로서 칸트는 대단히 명확하고 순수하게 "도덕법칙", 즉 도덕성 일반의 최고 원리를 생각했다. 이 원리 안에서 경험적인 현상은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1770년 무렵이 되자, 칸트는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즉, 자신의 "도덕형이상학"이 "시초의 근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태도나 감정에 대한 가능한 고찰 영역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도덕형이상학이 즐겁고 교훈적인 발견에만 제한되어서는 안 되며, 개별적인 주관의 의욕 혹은 행위의 주관적 원리에 불과한 준칙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도덕형이상학자로서 칸트는 대단히 명확하고 순수하게 "도덕법칙", 즉 도덕성 일반의 최고 원리를 생각했다. 이 원리 안에서 경험적인 현상은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348)]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완성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이 연기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1770년 3월 31일에 칸트는 내각의 명에 따라 논리학 및 형이상학 교수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도덕적 전문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를 기다린 것은 다른 과제들이었다. 10년 동안 그는 『순수이성비판』에 몰두했으며, 실천철학은 여기에서 단지 암시로만 드러났을 뿐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경험의 형이상학과 변증법적인 가상의 논리학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순수 이론이성과의 대결이 종결된 뒤에야 칸트는 비로소 실천이성, 즉 자신의 본래 사명에 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완성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이 연기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1770년 3월 31일에 칸트는 내각에 명에 따라 논리학 및 형이상학 교수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도덕적 전문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를 기다린 것은 다른 과제들이었다. 10년 동안 그는 『순수이성비판』에 몰두했으며, 실천철학은 여기에서 단지 암시로만 드러났을 뿐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경험의 형이상학과 변증법적인 가상의 논리학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순수 이론이성과의 대결이 종결된 뒤에야 칸트는 비로소 실천이성, 즉 자신의 본래 사명에 전진할 수 있었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348)] 1785년 4월 8일, 드디어 그의 『도덕형이상학정초』가 세상에 나타났다. 도덕적 견지에서 실제 "선한"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칸트는 문제시되는 것이 세계의 사태가 아니라 주체의 능력임을 전제한다. 윤리적 견지에서 볼 때, 도덕적 의식 일반에 대해 능력 있는 주체만이 선하거나 악할 수 있다. 그런데 선의 근원이 되는 주체적 혹은 주관적 능력이란 어떤 것인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인가? 칸트는 아니라고 답한다. 지능, 오성, 재치, 또는 학문적 지식은 해롭거나 악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질인가? 칸트는 이것 역시 아니라고 답한다. 우리는 용기와 인내 그리고 감탄의 기질을 가지고 선하게 행동할 수 있지만, 악하게도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운인가? 이것 또한 아니다. 권력이나 재산이나 인정 또는 건강 같은 행운을 통해 어떠한 일이 좋게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는 어떠한 도덕적 혹은 인륜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격인가?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존재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인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격이 그 자체 스스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아 있는가?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정초』는 단순한 규정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세상 밖에서도, 어떤 제한 없이 선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한 의지''' 뿐이다." 규정된 또는 보편적으로 수행된 법칙, 행복감, 공리적인 유용성, 외적인 자산들과 내적인 재질들, 이 모든 것은 결코 도덕성의 최상의 원리에 구성적인 것들이 아니다. 오로지 "의지"만이 윤리적 가치를 지닌다. 칸트는 도덕성의 합리적 근거를 "신적인 전능한 의지"에서 끌어내는 대신 전적으로 인간 의지의 자유로부터 이끌어내고 있다. 칸트는 1788년에 쓴 『실천이성비판』의 종결부에서도 "내 안의 도덕법칙"을 그 어떤 다른 근거에서 칭송하지 않는다.[* 도덕적 견지에서 실제 "선한"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칸트는 문제시되는 것이 세계의 사태가 아니라 주체의 능력임을 전제한다. 윤리적 견지에서 볼 때, 도덕적 의식 일반에 대해 능력 있는 주체만이 선하거나 악할 수 있다. 그런데 선의 근원이 되는 주체적 혹은 주관적 능력이란 어떤 것인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인가? 칸트는 아니라고 답한다. 지능, 오성, 재치, 또는 학문적 지식은 해롭거나 악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질인가? 칸트는 이것 역시 아니라고 답한다. 우리는 용기와 인내 그리고 감탄의 기질을 가지고 선하게 행동할 수 있지만, 악하게도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운인가? 이것 또한 아니다. 권력이나 재산이나 인정 또는 건강 같은 행운을 통해 어떠한 일이 좋게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는 어떠한 도덕적 혹은 인륜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격인가?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존재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인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격이 그 자체 스스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아 있는가?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정초』는 단순한 규정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세상 밖에서도, 어떤 제한 없이 선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한 의지 뿐이다." 규정된 또는 보편적으로 수행된 법칙, 행복감, 공리적인 유용성, 외적인 자산들과 내적인 재질들, 이 모든 것은 결코 도덕성의 최상의 원리에 구성적인 것들이 아니다. 오로지 의지만이 윤리적 가치를 지닌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354~355)] [* 1785년에 칸트는 도덕성의 합리적 근거를 "신적인 전능한 의지"에서 끌어내는 대신 전적으로 인간 의지의 자유로부터 이끌어내고 있다. 칸트는 1788년에 쓴 『실천이성비판』의 종결부에서 "내 안의 도덕법칙"을 그 어떤 다른 근거에서 칭송하지 않는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384)] 그러나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정초』는 경험의 영역과 도덕의 영역을 더 이상 결합할 수 없는 세계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도덕의 영역은 이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칸트의 도덕성의 이념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이의이다. 물론, 칸트도 윤리학 역시 경험적 부분을 지닌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정한다. 이것은 나중에 "실천적 인간학"으로 특징지어지며, 여기서는 감성, 쾌와 불쾌의 감정, 본능과 욕망, 그리고 한 인물의 성격도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칸트는 경험에서 추론된 것이 아닌 이성에서 추론되는 순수한 도덕 철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했다. 그것이 단지 도덕형이상학일 뿐이라해도, 도덕적 법칙을 순수하고 참된 본질 속에서 추구하려는 시도는 도덕성이 퇴색한 시대에 특히 가치 있는 일로 여겨졌다.[*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정초』는 세계를 잘게 쪼개어 더 이상 결합할 수 없는 세계로 보이게 만들었다. "도덕의 영역은 이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칸트의 도덕성의 이념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이의이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350)] [* 칸트도 윤리학 역시 경험적 부분을 지닌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정한다. 이것은 "실천적 인간학"으로 특징지어진다. 여기서는 감성, 쾌와 불쾌의 감정, 본능과 욕망, 그리고 한 인물의 성격도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칸트는 순수한 도덕 철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했다. 특히 도덕성이 퇴색한 시대에 도덕적 법칙을 순수하고 참된 본질 속에서 추구하려는 시도는 가치 있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단지 도덕형이상학일 뿐이다. 이 내부에는 "가능한 순수의지"의 이념이 놓여 있다. 여기서는 도덕이 문제시되기 때문에, 이 의지는 동시에 순수한 "선의지"라야만 한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35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